김민규

서른 번째 오월이다.

나이를 세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네가 태어나서부터 지구가 태양을 몇 바퀴 돌았는지, 그게 살아온 시간을 재는 줄자로 쓰일만한 것인지 물었다. 애초에 살아온 시간을 재는 것 자체가 무엇이 중요한지. 그렇다면 태어나서 몇 번 입맞춤을 했는지, 몇 번 사과를 했는지, 몇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따위의 것으로 서로의 인생을 비교하지는 않느냐고, 너는 물었다.

그건 절대적일 수가 없잖아.

절대적이어야 하는 걸까?

절대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절대적이어야만 하는 걸까.

정확하지도 않고. 몇 번 키스했는지는, 속일 수도 있잖아.

나이는 속일 수 없고?

나이도 속일 수 있겠구나.

그렇게 정확하고 절대적인 척도가 필요하다면 왜 월수나 일수로는 세지 않고 꼭 햇수로만 세는 걸까.

매일 세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바쁘지 않은데.

나는 바빠. 라고 대답하고 휙 돌아서버렸던 건, 열아홉 번째 오월이었다.

열아홉번째 오월부터 서른 번째 오월까지는, 나이를 세지 않고 오월을 셌다. 애초에 나이도 차별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논리에 완전히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구구절절 반박하거나 못마땅하게나마 동의할 바에는, 진심으로 수긍해버리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오월을 세는 것과 나이를 세는 건 결국 같은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네 편을 들어줘야 했다. 그래야만 네가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월의 끝에는 내 생일이 있으니까. 캐럴이 울려퍼지는 십이월도 좋아했지만, 지금은 차마 십이월을 좋아할 수는 없게 되고 말았다.

* * *

오월을 세는 동안 내가 바빴던 이유는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오가 바쁘지 않았던 이유는, 진오는 빚이 없었기 때문이다. 빚이 없어도 바쁠 수 있지만, 진오는 빚도 없었고 바쁜 일도 없었다. 빚도 없는데다가 머리도 좋으니까, 무슨 일이든 빨리 해냈다. 그래서 바쁜 일이 없었다. 대학도 한 번에 갔다. 나는 진오만큼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서른 살이 되고 보니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천재는 요절하는데 나는 요절하지 않고 여태껏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천재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접싯물에 코를 박는다 해도, 나의 천재성을 입증해주는 소설도, 교향곡도, 그림도, 논문도 없다. 빚은 다 갚았다. 빚을 갚고 요절한 건 천재가 아니라, 거지같은 거야, 라고 진오는 말했다. 그러니까 빚 같은 건 갚지 마. 그래놓고 진오는 요절했다.

진오는 요절했으니까 천재인 걸까. 진오는 소설을 쓰지도 않고, 작곡도 안 했다. 그림도 없고 논문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진오는 천재다. 진오는 요절했으니까 천재다.

* * *

열아홉 번째 오월은 오월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더웠다. 교실 걸상에 앉아 무념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쩐지 운동장이 일렁인다 싶을 때는, 아지랑이가 피었네, 하곤 말했다. 솨아아, 바람에 흐느끼는 파란 이파리들 사이로 강렬한 햇볕이 내리쬈다. 집을 나설 때에는 쌀쌀한 느낌이 없지 않았기에, 항상 도톰하게 차려입고 나왔으나, 항상 점심시간 즈음이 되어 그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교복 안에 땀이 꽉 차면 나무수액으로 된 바다를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와이셔츠를 풀어헤치고 선풍기를 끌어안았다.

선풍기를 끌어안은 내 뒤에 진오가 섰다. 진오는 교복을 벗는 일이 없었다.

덥지 않아?

덥지 않네.

더워, 저리 가.

진오는 어딜 가지 않았다. 대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시커먼 것을 들이밀었다. 매미였다. 미동도 하지 않는 죽은 매미였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검다기보다는 푸르스름했고, 매미 치고는 작았고, 작다기보다는 쪼그라들어 있었다. 귀엽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크기였다. 매미 시체 같은 것을 쥐고 히죽이는 진오는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르 떨리는 살아 있는 매미를 쥐고 있는 것과는 다른 행위였다. 이미 죽어 있는 매미를 주워온 것 같았다.

매미야.

매미네.

집 앞에 있었어.

그걸 학교까지.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본 것을 다 믿는 것도 아니야.

매미가 너무 빨리 나왔지?

오월에 매미가 나오는 건 이르지.

그래서 죽은 걸까.

그래서 죽었을 거야.

읽었던 책들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매미는 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육 년, 내지는 칠 년을 땅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세상에 나왔느넫, 너무 이르게 나와서 죽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매미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쌍하네, 라고 나지막이 말했는데, 진오가 그것을 들었다.

불쌍하지 않아.

몇 년이 걸러 성충이 되었는데, 날개도 펴보지 못하고 죽은 게 불쌍하지 않아?

불쌍하지 않지. 매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면서, 어찌 보면 매미 입장에서 듣기엔 상당히 불쾌하지.

매미 입장에서 듣기엔, 이라고 말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입장이란 말은 매미 같은 것에게 쓰기에는 껄끄러운데. 그렇지만 매미의 입장을 대변하고 매미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진오의 말은 언제나 약간은 껄끄러웠다. 진오의 말은 계속해서 껄끄러워져갔다.

매미가 죽고 싶어서 죽었을 수도 있고. (죽고 싶어서 죽으면 불쌍하지 않나?) 꿈을 이루고 죽었을 수도 있고. 사실 일찍 나왔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일찍 나와서 죽었다고 하는 건 폭력적인 언사야. 어쩌면 이 매미도 천재였을지도 몰라.

천재?

요절한 천재였을 거야, 아마.

진오는 늘 천재의 요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남길 것. 미칠 것. 마지막으로, 요절할 것. 셋 다 중요하지만, 요절하지 않으면 수재(秀才)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오는 생각했다.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부럽다, 하고 나지막이 말하는 진오를 보았다.

오월이 이렇게 더운 건 백년 만이래, 하고 진오는 화제를 돌렸다. 진오의 말이 기괴해져 갈수록 내가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게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야.

지구온난화는 이유가 아니야.

지구온난화 때문에 더운 게 아니야?

지구온난화는 현상이야. 지구 온난화 때문에 덥다는 문장은 아무 뜻도 없는 껍데기야. 그런 무책임한 껍데기는, 진짜 이유를 찾고자 하는 논의마저 차단해.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감기에 걸려서 기침이 나오는 겁니다, 하고 마는 거야. 진짜 이유는 공장들. 공장들이 내뿜는 매연. 공장들을 지은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공장주인들. 그니까, 인간들.

그럼 이게 다 인간들 때문이야, 라고 말해?

다 인간들 때문은 아니고.

더운 게?

다 인간들 때문은 아니라니까.

* * *

진오는 좋은 동네에 살았다.

진오와 내가 사는 곳은 그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아버지는 늘 진오가 사는 곳을 좋은 동네, 우리가 사는 곳을 이딴 동네, 더러운 동네, 하곤 했다. 이딴 동네가 그렇게 더럽지만은 않았다. 다만, 이딴 동네에 비해 좋은 동네가 도로 포장도 잘 되어 있고, 솟아 있는 아파트들도 많았고, 진오네 가족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었다. 이딴 동네에는, 이딴 길이 깔려 있었고, 이딴 집이 서 있었고, 그 안에는 이딴 가족들이 살았다.

아버지는 우리가 이딴 동네에 사는 것을 친구를 가려 사귀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줄곧 말했고, 너는 꼭 친구를 가려 사귀어야 한다고 했다. 술병을 잡고 불룩 나온 배를 만지며 그런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랐지만, 아직까지 친구를 가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 했고, 아버지도 내 친구를 본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진오를 본 적은 있지만, 진오를 두고 별 말씀이 없었던 것을 보아 진오는 가려 사귄 친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진오의 아버지를 본 적이 있었다. 진오의 아버지는 나를 가려 사귄 친구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오의 아버지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딱히 진오에게 친구를 가려 사귀란 말을 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진오의 집에 여러 번 들른 적이 있었다. 진오의 집은 거실만 해도 우리 집보다 넓은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를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이 진오의 아버지였다. 진오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웃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내가 불편한 것은 진오 아버지의 웃음이 아니라 진오의 집에서 지켜야할 것들을 못 지키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진오네 집에는 지켜야할 것들이 많았다. 진오는 항상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털었다. 손을 씻고, 냉수를 컵에 따라 한 잔 마시고, 가방에서 책을 빼서 어딘가에 정리해둔 뒤에야 무언가 다른 일을 시작했다. 진오는 이런 규칙들을 착실하게 지켰다. 책은 책상에서 읽었고, TV는 소파에 앉아서 봤고, 바지를 갈아입지 않고는 침대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책을 소파에서 읽거나, TV를 바닥에서 보거나, 하는 것들은 허용되지 않았다. 손님인 내가 이런 규칙을 어긴다고 누구에게 쓴소리를 들은 적은 없으나, 진오의 눈빛 정도는 알아볼 눈치가 있었기에 진오의 집에서는 진오 가족의 규칙들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

진오의 아버지는 진오에게 기대가 많은 사람이었다. 3등을 하면 2등을 하길 바랐고, 2등을 하면 1등을 하길 바랐다. 진오가 진학할 대학교, 공부할 과목, 졸업 후 진로 같은 것들도 꽤나 꼼꼼히 구체화하여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진오도 다 동의하는 것들이었다. 종종 내게도,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니, 대학은 어디를 생각하고 있니, 따위의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것들을 물어본 사람이 처음이라,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얼굴이 벌게지곤 했다. 보통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사나. 진오는 그런 듯 했다.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그런 것에 내색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하면 그만이지,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속마음까지도 진오가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을 바라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진오가 사립 고등학교의 입학시험을 떨어졌을 때에 제일 흥분한 것도 어머니였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하나도 제대로 가지 못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울며 진오를 꾸짖었었다. 하지만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진오의 어머니는 온화했고, 학교를 보낼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 그런 분이었다.

진오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매 학년 칭찬이 가득했고, 그 칭찬이 무색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단정하고 성실했으며, 명석하고 영리했다. 그런 진오를 부모님은 아주 대견스러워했다. 벽에 걸려있는 널찍한 가족사진에서도 그 대견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가족사진의 맞은편에는 큰 달력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진오와 진오의 아버지와 진오의 어머니의 개인적인 일정들이 적혀 있었다. 누구를 만난다든가, 어디에 간다든가, 하는 세세한 기록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것은 세 가족의 스케줄이 담긴 하나의 보고서였다. 서로에게 서로가 보고를 하는 그런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몇 장을 넘겨보면 진오네 가족이 언제 어디로 여름휴가를 떠날지도, 진오의 어머니가 한 달에 몇 번 장을 보는지도, 진오의 아버지가 골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보고받을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달력에 내 생일도 적혀 있었다.

내 생일은 여기 왜 있어?

달력에 생일을 적는 게 이상해?

달력에 생일을 적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지만 내 생일이 진오네 달력에 있는 것은 이상했다. 진오의 아버지도 내 생일을 알고, 진오의 어머니도 내 생일을 안다는 뜻이니까. 혹시나 해서 달력을 뒤져 보았지만, 진오네 가족을 제외하고 생일이 적혀 있는 것은 나 밖에 없었다. 내 생일날, 진오네 가족은 무슨 대화를 나눌까. 달력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소파에 앉아 TV를 조금 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면서 나의 무언가를 놓고 온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진오네 집에 갈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나의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면 진오네 집에 그만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 *

집 대문이 으레 그렇듯 잠겨 있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았던 것은, 그렇다고 누가 들어온 적도 없을뿐더러, 들어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잠겨 있어도 들어 올 방법이 많았기 때문이다. 담장만 해도 그리 높지 않았다. 돌 같은 것만 준비 되면 충분히 디디고 올라가 넘을 수 있는 높이였다. 인기척을 내는 것이 싫어 천천히 문을 열고 발을 디뎠다. 현관에 들어서면 몇 걸음 앞이 부엌이 있고, 그 몇 걸음으로 끝나는 마루가 있다. 장판이 울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찔꺽이는 소리가 났다. 설거지 거리가 늘어있는 것을 보아, 아버지가 점심 때 집에 돌아 와 밥을 먹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교복을 벗어 마당의 빨랫줄에 결어두고, 마루에 드러누웠다.

진오가 우리 집에 온 것은 기껏해야 세 번이 되나 싶다. 진오는 줄곧 우리 집 에 오고 싶어 했으나 나는 멀기 때문에 싫다고 했다. 사실 진오네 집에서 길 한 번만 건너도 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할머니를 진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상해졌다. 누워서 낮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빨갱이야, 빨갱이가 쳐들어온다야, 피란을 가야해, 빨갱이가 총을 들고 오고 있어. 하며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정말이지 할머니의 눈빛은 지금 당장에라도 총을 맞을 것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무서움은 사라졌지만, 할머니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할머니를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할머니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하여 남편과 상경했다. 그곳에서 나의 백부가 되거나 고모가 될 수 있었던 아기를 밴 찰나에 육이오가 터졌다. 전쟁이 났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할머니는 누구보다 빨리 보따리를 꾸려 피란을 갔지만, 넘어지고 구르고 달리는 와중에 아기를 유산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할머니는 선뜻 아기를 가지려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을 참고 기다려준 남편 덕분에 할머니는 늦은 나이에 나의 아버지를 낳을 수 있었으나, 할머니의 남편인 나의 할아버지는 아들도 보지 못한 채 폐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홀몸으로 아버지를 키우느라 강인하게 살아왔지만, 치매만은 그 강인함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종종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에도 문을 따고 나가서 동네 사람들을 붙 잡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빨갱이가 우르르 와야, 내 남편이 빨갱이 총에 죽어부렀어, 내 말 좀 들어야, 빨갱이가 비행기를 타고 폭탄을 뿌리러 온다고, 우짜쓰까, 우짜쓰까.

그럼에도 이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점차 할머니를 이해해 주었다. 하루 이틀 보는 일도 아니었고. 할머니가 문 밖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할머니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 주었다. 어머니는 처음에 어머니! 어머니! 하고 울면서 할머니를 방으로 모셨지만, 나중에는 할머니를 데리러 와주는 아저씨들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말없이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방으로 끌고 갔다.

놔야! 놔야! 빨갱이가 오는데 어딜 가냐! 이럴 때가 아녀. 빨갱이가 몰려와야! 목을 놓아 소리 지르며 끌려가는 할머니는 안방의 벽지를 다 뜯어 놓았다. 그런 벽을 진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 * *

그 해 십이월, 수능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오니 적막만이 감싸고 있었다.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에게서 나온 무언가를 펄럭이며 집에 오는 것은 잠깐이나마 짜릿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덩그러니 집에 가방을 내려놓고 다들 어딜 나갔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동네 아저씨가 나를 찾으러 왔다. 그리고 아저씨가 모는 트럭에 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뛰어다니고 있었다. 응급실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 피를 훌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실려 들어왔다.

내가 갈 곳은 영안실이었다.

하얗고 두꺼운 글자로 적힌 영안실 간판 아래에, 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사람들을 붙잡고 목 놓아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끔벅이며 울부짖는 며느 리를 쳐다보았다.

느그 아부지가 죽었어. 느그 아부지가…….

이미 구겨 넣은 수능성적표를 주머니에 더 깊숙이 쑤셔 박았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불을 피우다 죽었다고 했다. 너무 추워 장작을 모아 불을 붙였는데 하필 그 불씨가 화학 약품이 든 창고로 번져버렸다. 불을 피운 것은 아버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방대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이 확실해 있던 몇 사람 중에 하나였으므로, 폭발의 심장부에 있었음은 확 실했다. 그 날 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살아갈 운명 에 처하게 되었다.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어떤 논객이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논하면 앵커는 맞장구를 쳤다. 작은 부주의가 어떻게 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보상금 문제는 어떻게 처리될지 같은 것을 이어서 보도하였다. 어머니가 영안실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도 짤막하게 삽입되어 있었다. 얼굴을 흐린 것은 아 무 소용이 없었다. 뒤이어 몇 억, 몇 억 하며 회사가 가입되어 있는 보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렇게 며칠간 저녁 뉴스의 첫 꼭지가되었다.

어머니는 합동 장례식을 거부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영정 앞에 서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빈소를 골라 짧은 장례식을 치렀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명함을 내밀며 찾아와, 공장을 대신해 보상금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어머니는 그들을 쫓아내 버렸다. 그 사람들은 하루 뒤에도 끈 질기게 찾아 와 서명 몇 개를 받아갔다.

친구 중에서는 진오만 빈소에 찾아왔다. 뉴스만 보고 소식을 알아챈 것 같았다. 사색이 된 진오는 쭈뼛쭈뼛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약간의 침묵이 호른 뒤, 진 오가 먼저 입을 쨌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쉬고 있었는지, 회사가 난로 하나 주지 않았는지 같은 것을 꼬치꼬치 캐묻다가, 내가 대답하기 피곤해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나도 별로 울지 않았는데, 진오는 나보다 더 많이 울고 있었다.

* * *

아버지 죽음의 여진은 다양한 방면으로 내게 찾아왔다. 어머니는 일을 나가게 되었다. 주로 식당 같은데서 일을 하며 밤늦게 들어와서는 쪽잠을 자다가 아침 상을 차리자마자 다시 나가곤 했다. 어머니랑 마주치는 시간도 줄었지만, 같이 있을 때에도 대화가 줄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가버렸어, 느그 아부지는. 우릴 내팽개치고 그냥 가버린 거야.

…….

빚만 던져두고 가버렸어, 이 양반이. 하늘이 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제 발로 간 거야. 육시랄 양반…….

어머니는 채소를 씻다가도 아버지 생각이 나면 물을 틀어둔 채 소리를 지르다 가 안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들어가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나오질 않았는 데, 그러면 내가 남은 식사 준비를 마치고 할머니를 먹여드려야 했다.

우리 집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딴 집에 손님이라곤 한 번도 맞이해본 적이 없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몰아닥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단 한 명도 문 안으로 들이질 않았다. 우리를 사진에 담고 싶은 기자들도. 공장을 대표한 검은 양복의 사람들도. 어떻게 공장에 게 합의금을 받을 수 있냐고 소리치는 다른 유족들도. 그들은 주로 시끄러웠고, 그 소란은 할머니를 자극시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밖으로는 문을 두드리며 요란을 떠는 사람들과 안으로는 온몸을 발버둥치는 할머니를 상대하느라 하루 종 일을 집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물러가고 나면 대문은 어딘가 구겨져 있었고, 담장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어머니는 그것이 싫은지 몇 번씩 대문 을 망치로 두들겼으며, 호스로 물을 뿌려 담벼락을 씻어냈다. 보통 그 두들김은 대문을 더 울퉁불퉁하게 만들었고, 담벼락의 낙서는 물에 번져 더욱 기이한 모습이 되었다. 어느 하나 어머니의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 때면, 다시금 내 앞에 서 욕을 퍼붓고 방에 들어가 초점을 잃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빠르게 늙었다. 곱지 못한 표정으로 쌀쌀맞게 손님을 대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식당에서도 여러 번 잘리게 되었다. 여러 번 일자리를 옮기면서 어머니의 하루 일정은 변칙적이게 되었다. 어떨 때는 새벽에 나가서 낮에 돌아와 잠을 좀 자다가 저녁에 다시 나가 일을 할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가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접점 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 * *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갈 수 없었다, 라고 말할 때 마다 진오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 나라에는 공장이 많이 돌아가고 있었고, 공장 같은 곳이라면 일손이 부족했으면 부족했지, 일하 러 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만큼 여유로운 곳은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오월이 더 더워질까. 하지만 오월보다는 빚이 더 큰 문제니까, 라고 생각했다. 주말에도 몸을 쉬게 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저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 내 팔자라는 듯이 살아갔다.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처음 맞이한 오월은 그 작년만큼 덥지 않았다. 나는 편 의점 계산대에서 포스기를 붙잡고 진오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진오는 종종 이렇게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줬다. 밤에는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진오는 주로 밤에 찾아 왔다. 지난달까지 일하던 편의점은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편의점이 문을 닫아 버스로 30분을 타고 가야 있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진오는 찾아온 것이 다. 그만큼 한가한 진오가 부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진오가 하루 종일 들었던 말실수를 늘어놓고 있었다.

진오는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누가 대본이라도 써준 것 같이 말을 했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문장 처음에 무슨 말로 시작했는지 까먹을 정도로 긴 문장을 말할 때에도, 진오는 막힘이 없었다. 내가 진오 앞에서 말을 할 때면 종종 문 장을 끝내지도 못하고, 설령 끝낸다 하더라도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찾았다.

말이라는 건 사람들 상호간에 서로 알아먹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라고 내가 말했을 때에도 진오는 상호간이랑 서로는 같은 뜻이야, 하고 꼭 트집을 잡았다. 트집만 잡으면 다행이고, 내가 한 말을 가지고 한 시간을 떠들기도 했다.

‘알아먹다’ 라는 말은 신기해. 뭘 먹어. 말을 먹어? 말도 먹는 건가? 나이도 먹고 겁도 먹고 더위도 먹고 1동도 먹듯이 말도 먹는 걸까? 알아먹다. 잊어먹다. 알아먹은 걸 잊어먹고. 잊는다는 것도 까먹는다고 하잖아. 그러면 잊어먹는 건 까먹어먹는 것이야? 먹어먹어? 알아먹었어, 아니면 몰라먹었어?

진오의 말을 알아먹으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진오가 이렇게 순식 간에 말을 내뱉을 때에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내 말실수를 지적하는 것이 조금 언짢기는 했으나, 이렇게 밤중에 찾아오는 손님은 진오 뿐이라 딱히 내쫓을 수는 없었다. 말이 너무 많다 싶을 때에는 김밥 같은 걸 하나 꺼내주면, 진오는 그걸 먹느라 잠시간 말을 멈추었다.

* * *

진오는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더 어려운 말을 했다. 노동이니, 계급이니, 하는 단어들을 섞어 말하면서 핏대를 세우는 때가 많아졌다. 진오는 시위에도 많이 나갔다. 시위에 나가 맞고, 다쳐서 들어오는 때가 많은 데도 진오는 그런 곳을 자주 갔다. 나는 시위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한두 번, 뉴스나 신문에서 파업 이야기가 나올 때에, 아버지는 호통을 쳤었다. 파업 때문에 길을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젊은이들은 일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젊은이로 보이지도 않았고, 아버지는 차도 없어서 불편한 일도 없었겠으나, 듣고 있던 나로선 그냥 그러려니 했다.

파업을 해서 불편한 게 아니라, 불편하게 하려고 파업을 하는 거야.

진오는 온몸이 젖은 채로 이런 말을 했다.

파업 자체가 방해를 하려고 하는 거라고. 보세요, 사람들, 이런 것이 부당해요, 하고 공손히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나줘?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게 파업이야. 길을 막고 기차를 세우는 게, 사람들 보고 멈춰 서서 들으라고 하는 거라 고.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듣지 않아. 그러니까 파업 때문에 불편하다는 말은 웃긴 거야.

진오는 진오가 다니지도 않는 회사의 무슨 파업 시위에 참가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시위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하얀 분가루 같은 게 젖은 몸 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진오 얼굴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너희 아버지가 죽은 것도, 다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었다고. 악덕한 경영진 들이 원인인 거야. 안전한 곳에 따뜻한 난로 하나 있었으면 아버지가 그런 데에 불을 피웠겠어?

그만 좀 해. 상처 벌어져.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가도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어. 비슷한 사고가 계 속해서 일어나는 데도 벌금 십 원 내는 회사가 없어. 보험금조차 제대로 챙겨주 지도 않야 다 노동자 탓으로 몰아가고.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어 가는데. 노동환경은 몇 십 년째 제자리야. 너희 아버지도 그래서 돌아가신 거라고. 왜 너는 분노하지 않는 거야?

제발 좀 닥쳐!

진오에게 그 날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왜 나한테 그래? 아버지가 죽은 게 내 탓이야? 백날 시위 나가 봐. 뭐 얻어서 돌아온 게 있어? 바뀐 게 있냐고. 사람이 죽어도 세상이 변한 게 없다면서, 시위 롤 나가면 세상이 변해? 분노하면 뭐가 달라져? 노동환경? 잘났다. 네가 노동을 해봤어? 나는 매일 노동을 해. 매일 빚을 갚으려고 발버둥 쳐. 너는 뭔데, 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가 뭐 때문에 돌아가셨는지 그렇게 잘 알아? 네가 거기 있었어? 아버지는 불이 나서 죽은 거야. 그게 다라고.

불이 나서 죽은 건 원인이 아니야……불이 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고……. 잘 들어봐, 내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맞는 말이라고 다 해도 되는 건 아니야.

나는 진오에게 다시는 일하는 곳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진오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진오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오랜 신호대기음 끝에 진오가 전 화룰 받았다.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 높은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진오는 담담하게 물어보았다.

무엇을 좇는 걸까. 좇아야만 하는 걸까. 굳이 대학을 다니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 얻어온 모든 것들은 거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얻은 건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세상은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데 차별과 멸시. 착취와 기만 속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나약한데 강하지 못해 왜냐하면, 나는 아무런 시련도 겪어보지 못 했거 든. 네가 부러워 내게는 없는 고난을 가져서 부러워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될 수 없어.

진오의 말은 점점 더 피상적이고 기괴하게 들렸다. 내가 갈게.

오지 마. 지금 어디야.

오지 마, 오면 뛰어 내릴 거야. 어디인지 안 알려줘.

진오는 갈수록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역시 뛰어 내리는 건 무서워. 엄청나게 아프겠지. 물에 빠져 죽는 것도, 불에 타 죽는 것도 엄청나게 아플 거야.

진오는 떨리는 목소리로 죽음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약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약이 있으면 그걸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나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진오가 접점 무서워졌다. 하지만 문득, 천재는 광기가 있어야 하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오 말대로, 세상을 바꾼 천재들은 다 약간 미친 사람들이었으니까, 라는 생각에, 진오가 좀 더 미치고 좀 더 절망하면 세상 을 바꿀 무언가를 창조해내지 않을까 싶었다.

애초에 진오에게는 지금까지 그런 아픔과 외로움이 없었잖아, 라고 생각했다.

조금 이기적이지만, 내가 아팠던 만큼 진오도 아파봐야 하지 않을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진오도 힘들어보고 죽고 싶어보고,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어봐야 자신을 가둔 온실을 부수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면서, 더 이상 진오를 찾아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진오의 광기어린 말들이 진심으로 지겨워졌다. 그래서 진오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해가 지났다.

* * *

늦은 시각에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갚아도 갚아도 사라지지 않는 빚과, 갈수록 미쳐가는 할머니에 대 해 푸념하다가, 이번에는 나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왜 대학을 가지 않았냐, 시대 가 어느 시대인대 죽을 때까지 공장에서 주는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아서 지 애비처럼 살 것이냐. 너도 니 애비 꼴이 날 거야.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던졌다. 나는 빈 술병을 치우고 행주로 상을 닦았다. 술을 그만 마시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지 않고 계속해서 소주를 들이켰다. 어머니는 그 날 아침 좋은 동네 아파트에 청소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동년배로 보이는 여자에게 걸레 빨던 물을 튀게 했고, 못 배운 년. 싸가지 없는 년, 같은 욕을 먹었다. 한 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꿨다. 그게 너무 서러워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너도 공부 다시 해. 2년제든 뭐든 좋으니까 일단 대학 가라. 그동안은 이 애 미가 돈 벌게. 원금은 못 갚아도 이자는 메꾸면서 살 수 있겠지. 그니까 대학 가라, 응?

그날 밤 나는 어머니와 겸상하며 집에 남아 있던 술을 모두 비웠다. 술을 마시며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동안 그렇게 욕을 퍼붓고도, 그날만큼은 아버지를 찾았다. 한 잔을 비울 때마다 아버지를 불렀다.

두 달 뒤, 나는 다니던 일자리를 모두 접고 어머니의 뜻에 따랐다. 내가 공부 를 하는 동안은 어머니가 배로 일을 해야 했지만, 오히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거나 술을 마시는 일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 * *

집에서는 공부를 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구청에서 여는 도 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다. 시험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였지만, 나는 잠을 줄이는 것으로 교통비를 대신했다. 겨우 도서관까지 도착했는데, 필요한 책을 두고 온 날이라면 정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이 열려 있었다. 조잡하게 널려 있는 자물쇠는 할머니의 부재를 의미했다.

집 나간 할머니를 찾기 위해 이딴 동네를 헤집고 다녔으나, 할머니가 자주 가는 구듯방, 주차장, 쓰레기장까지 뒤져 보아도 할머니는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길을 건너 좋은 동네로 넘어갔다. 길을 건너자마자 저 멀리서 할머니가 내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 할머니와 젊은 여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있었고, 젊은 여자 옆에는 어린 남자 아이가 주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가야, 빨갱이가 오고 있어, 살쾡이 같이 생긴 빨갱이가 쳐들어오고 있어,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젊은 여자는 이 미친 할망구, 당장 우리 애한테 손 떼, 하며 할머니가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할머니를 잡으러 달려가는 순간, 어린 아이는 주스를 한 모금 머금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아이의 뺨을 때리고는, 빨갱이들이 물에 독을 풀었어! 먹으면 뒈져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울고 젊은 여자는 그 자리에서 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는 할머니를 붙잡고 젊은 여자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여자의 눈빛은 오물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여자는 당장 경찰서로 가기를 요구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여전했다. 할머니 가 다시 한 번 아이의 주스를 뺏으려 할 때, 할머니의 손목을 세게 움켜잡았다.

할머니!

할머니에게 한 번도 소리쳐본 적 없는 나를 할머니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발 그만 해요, 할머니. 나, 너무 힘들어. 할머니, 여기 빨갱이 없어, 전쟁통이 아니라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참 전에 병으로 죽었고, 빨갱이 총에 맞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여기. 독극물 같은 거 안 풀었다고, 진짜. 왜 오늘은 여기 까지 와서 그래요. 여기서 삐끗하면, 우리 집 사정으로 물어줄 돈도 없어요. 왜 다 나를 힘들게 해, 제발 그만해요, 할머니. 돌아가자, 할머니.

웬일인지 할머니가 순순히 조용해졌다. 나는 젊은 여자에게 다신 안 그러겠다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빠르게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행인들 중에 진오가 보였다. 진오는 이전보다 훨씬 마르 고, 안색도 달랐지만, 진오인 것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진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진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할머니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오는 왜 그렇게 초췌해진 걸까. 졸업은 한 걸까. 아직도 시위만 다니고 있는 걸까. 천재가 되어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창조해냈을까. 아니면 그냥 거지가 되어 버린 걸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공부가 끝나기 전까지는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해 십이월이 되었다. 거리마다 상점들은 캐럴을 틀었다. 나는 모든 시험이 끝나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집에서 가까운 24시간 인쇄소에 한 자리가 생겨 그곳에 갔다. 인쇄소가 24시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밤에도 급하게 무언가를 출력하는 사람은 꽤 많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출력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밤에 더 많았고, 낮에는 프린터에 잉크를 채우러 오는 사람이나, 제본 따위를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밤에 카운터를 지키고 있자니, 진 오 생각이 났다. 진오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진오 번호를 지운지라 진오 어머니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진오 친구예요, 어머니. 진오 번호가 없어서요.

어머니, 안 들리세요?

진오는 죽었다.

네?

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진오는 내가 전화하기 삼 일 전 새벽, 다량의 항우울제, 진통제, 수면제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부모님의 권유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받은 약을 모아두었던 것이다. 진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은 것은 아니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대학 병원으로 실려 갔다. 거기에서 호흡기를 끼고 점심때까지는 살아 있었으나, 목구멍으로 관을 삽입하던 도중 쇼크로 사망했다.

나는 진오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이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진오의 부모님은 진오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오를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진오의 부모님을 설득하여 진오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진오 방의 유품을 정리하는 데에도 일손을 보탰다. 그들은 집에서 일주일을 두문불출하였음에도, 내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진오 방을 털끝 하나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진오의 방에는 수천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중 절반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절반은 바닥에 쌓여 있거나,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진오네 집의 거실이 놀랍도록 깔끔한 것에 비하면 진오네 방은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진오는 창문에 검은 옷을 걸어 두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축축하다고 느꼈다. 바닥에 있는 책들을 최대한 책장에 구겨 넣었다. 헤게모니…… 권력의…… 구체제로부터…… 메마름에 관한…… 투박한 표지들에 박혀 있는 제목들은 제목 그 자체로 위화감을 조성하여, 어떻게 이런 책들의 첫 장을 넘겼나 싶었다. 책들을 걷어내니 바닥에는 신문과 잡지룰 오린 조각들, 사진들, 설계도, CD 같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폭발 사고로 인부 사망… 진상규명과 손해배상…… 오 년 전 이맘 때 나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사고에 관한 자료였다.

진오는 그 긴 시간 동안 끈질기게 그 사고를 파고들었다. 당시 현장의 부실했던 안전 관리부터 시작하여, 납품 비리로 인해 얼마나 안전성이 떨어지는 건축 자재를 구입했는지, 인부들을 위한 난방시설 예산이 어떤 경위로 삭감되었는지,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어떤 편법을 사용했는지, 시공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인부들을 얼마나 닦달했는지……. 내게 그냥 시위를 나간다고 둘러댔던 것들도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진오의 좌절 또한 여기에서 온 것이었다. 계속되는 집회와 서명 운동과 무력시위와 수많은 소송 끝에도 유가족 측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던 것도 이쯤이었다. 일 년 전, 마지막 항고마저 수포로 돌아갔을 때, 진오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골라준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며 책을 읽고, 간간이 학교에 나가 사람 둘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진오의 부모님은 그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졸업조차 하지 못하는 진오가 못마땅했다. 진오의 어머니는 진오의 졸업이 그렇게 한 학기, 한 학기 미뤄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었지만, 진오의 상태를 보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오의 어머니가 와인을 한 병 비우고는, 어두컴컴한 진오 방을 벌컥 열고 들어가, 그래도 진오야, 졸업은……, 이라고 말하게 되는 상황이 왔고, 진오는 어머니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오는 마지막 학기를 다시 등록했으나, 결국은 졸업까지 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말고사까지 다 마친 날, 망설임 없이 약을 삼켰기 때문이다. 기말고사 성적은 누구보다 우수했다. 진오는 자신이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대학생이라는 신세로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거리지 않기를 원했다.

그렇게 진오는 내가 십이월에 떠나보낸 두 번째 사람이 되었다.

* * *

서론 번째 오월은 특별한 오월이다. 아버지가 남간 빚을 몽땅 갚았기 때문이다. 좁은 원룸 방에 새우 등을 하고 누웠다. 뿌듯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라면 한 개로 하루를 때웠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 일만 하고 살아왔구나. 산다는 것은 일한다는 것, 일한다는 것은 빚을 갚는 것. 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빚이 없으면, 무얼 해야 하나. 무얼 위해 돈을 벌까. 빚이 없는 사람들은 월급을 어디에 쓸까. 한 번도 돈을 쓰고 싶은 대로 써본 적이 없으니, 장을 볼 때도 빚을 갚기 전과 후가 별 다름이 없었다. 빚이 없는 상태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했다. 그 생소함이 짜릿했다. 일단 남는 돈은 무작정 모으기로 했다. 나중에 또 빚이 생기면 그 돈으로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을 모은다는 게 너무 기특했다.

이런 기특한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진오도, 아버지도, 정작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내가 빚을 갚기 전에 다 죽어버렸다. 진오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는데. 서른 살이 되어버렸으니까, 지금 죽어도 천재가 될 수 없어, 라고 진오는 말했을 것이다. 빚은 내게 천재가 될 기회도 주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꾹, 꾹, 눌러가며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진오의 어머니 번호가 보였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는 순간 목이 턱 하고 막히 는 것 같아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저예요, 진오 친구였던…….

진오의 어머니는 반가운 듯한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어딘가 눈물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소식을 전했다.

그레 이렇게 가끔 안부 전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더 이상은 목이 메어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얘야.

네, 어머니.

생일 축하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원룸 방에서 숨을 죽이며, 눈물을 참고 살아온 날들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흐르는 눈물을 셨다. 눈물을 세며 진오를 불렀다. 서른 번째 오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 * *

매미가 치오옷 치오옷 하고 운다.

동네에 나무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여기저기서 매미가 우는 것이 들린다. 매미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소리를, 서로 다른 주기로 낸다. 그 서로 다른 소리들이 하나로 모여 여름을 여름답게 만든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멎어있고, 조용하다 싶으면 다시 온 힘을 다해 울고 있다. 매미 소리 가있어 하늘이 이토록 맑아 보인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첫 매미를 찾는다. 첫 매미를 보면서 생각을 한다. 너무 이르게 나온 매미. 요절한 매미. 이르게 나와서 죽은 걸까. 아니면 죽기 위해 이르게 나온 걸까. 오월에 매미가 나오게 한 것은 인간들 때문이었을까. 매미는 인간들 때문에 죽은 걸까. 다 인간들 때문은 아닌 걸까. 매미는 천재라서 요절했을까. 진오 같은 매미를 보며, 진오에게 진 빚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일을 하고,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간다. 더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 고, 내가 진 빚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빚에 맞춰 돌아가는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진오에게 진 빚은 갚아지기보다는 부풀어만 간다.

나는 눈부시도록 가슴시린 오월 속에 살고 있다.